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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미국 클래식 카의 황제 패커드(Packard) -5-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1-08-17 17:45:32

본문

GM, 포드 압박에 사라진 미국 클레식 카의 황제

패커드의 제2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2대째의 뉴 트윈 식스는 유럽에 전운이 감도는 불안한 상황이라 초대 트윈식스와 같은 압도적인 매상을 올리지는 못했다. 뉴 트윈식스는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까지 총 5,744대 생산에 불과했다. 그리고는 트윈식스의 생산중단과 함께 패커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GM의 캐딜락과 포드의 링컨이 탄탄한 자본력을 배경으로 패커드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차 대전 중에 패커드는 항공엔진분야에서 다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번은 자사 설계가 아닌 롤스로이스에서 설계한 ‘마린’엔진이었다. 영국은 롤스로이스에서 설계한 ‘마린’엔진 만들어 얹은 전투기로 1940년 2차 대전 초기의 영국과 독일간의 공중전에서 우세한 전력을 보였다. 이때 영국의 주력전투기인 ‘슈퍼 마린 스피트파이어’에 롤스로이스 엔진이 탑재되어 다이뮐러제 엔진을 탑재한 독일의 메사슈미트 Me109나 BMW제 엔진을 탑재한 포케울프 FW190전투기와의 싸움에서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다. 이때부터 롤스로이스는 우수 성능의 항공기엔진 메이커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어 41년 미국의 참전과 함께 이 마린 엔진은 미국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전투기의 주력엔진이었던 GM계열의 엘리슨 V12 엔진은 성능적으로 ‘영국이나 독일의 전투기를 도저히 쫓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패커드사가 그 제작능력을 인계받아 영국에서는 도저히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양을 그것도 매우 높은 정밀도로 생산해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이것이 패커드 자동차의 마지막 생명이었다. 2차 대전으로 호화판 차의 시장은 급락하는 변동을 일어났다. 전시체제의 미국사회는 호화판 차를 받아들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패커드는 싼 차를 만들면서 고전했지만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지 모하고 1962년에 패커드라는 이름은 자동차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2차 대전 전 화려했던 미국 클래식 카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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