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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세기 초월의 명 클래식 카, 이스파노 스위자 (3)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1-12-27 18:17:57

본문

1912년 알폰서13세는 30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당시 유럽의 왕들 중에서 손꼽힐 만큼 굉장한 자동차 광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비르키트는 국왕과 친해졌으며, 이스파노-스위자는 스페인 왕의 자동차로 유명해졌다.

그 후 1914년 최고시속 120km를 낼 수 있는 멋진 스포츠카인 `알폰소 15T`를 만들어 국왕에게 받치자 왕은 물론 왕비도 이 치에 반해 즉석에서 구입할 정도였다.

1911년, 이스파노 스위자는 최고급 자동차의 수요가 훨씬 많은 시장을 찾아 국외 공장을 파리 근처에 세우고 브랜드 명을 이스파노 프랑스(Hispano France)로 바꿨다가 1914년 스페인에 새 공장을 지으면서 다시 이스파노 수이자로 돌아갔다.

프랑스에서 내놓은 이스파노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V12항공기 엔진을 얹은 페가소 스포츠 튜어러 모델을 개발했다. 항공기 엔진답게 스포츠의 엔진은 매우 가볍고 견고할 뿐만 아니라 뛰어난 출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4바퀴 모두 요즘의 유압 디스크 브레이크를 사용함으로써 탁월한 제동 성능을 나타냈다. 프랑스에서는 1938년까지 생산해 프랑스 상류사회 카 마니아들의 인가를 독점했다.

제1차 세계재전이 시작되면서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비행기 엔진 제작에 정열을 쏟아 기술을 넓힌 이스파노 수이자는 전쟁이 끝난 뒤 항공기 엔진 기술을 접목한 명 클레식 카로서 쿠페, 컨버터블 등 다양한 모델을 선보였다. 비르키트는 자동차설계뿐만 아니라 항공기엔진분야에서도 놀라운 기술을 발휘했다. 1919년, 파리 모터쇼에서 처음 선보인 최고급 이스파노 스위자 H6을 시작으로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이스파노 수이자 고급자동차들의 전성기였다. 이 시기에 이스파노 수위자의 명성은 영국의 롤스로이스에 에 버금갔다.

1928년,이스파노 스위자는 엔진 실린더라이너에 특수합금을 채용했으며 이 합금은 오늘날 「니드라로이」로 알려져 있는데 비르키트는 치금학 전문가에 앞서 이미 이것을 개발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군수산업발전의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스위스 최고훈장을 받았고 1945년엔 스위스국립공업대학 명예박사가 되었다.

그는 무척 겸손한 사람이었다. 새 차 모델을 발표하는 어느 파티석상에서 「나는 한사람의 자동차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명해지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했고 다만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의 업적에 대해 때론 과소평가되기도 했으나, 그가 이룩한 기솔혁신은 오늘날까지도 그 빛을 찬란하게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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