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으로 수출한 두 번쩨 국산차, 하동환자동차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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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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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14 17:1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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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8월 초순 드디어 20대의 버스가 부산에서 선적되어 사이공항에 하역됐을 때는 당시 수상이었던 쿠엔 카오 키씨가 직접 환영식장에 나와 축하할 정도였다.
우리의 자동차 공업이 초창기를 걷고 있던 때에 국산버스를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동환 자동차의 사주인 하동환씨의 노력도 있었지만 당시 월남에서 미군수품 수송용역 사업을 크게 벌였던 대한항공 설립자인 조 중훈씨와 병기장교들의 도움이 켰다는 후문이다.
조 중훈씨는 개인적으로 하 동환씨와 교분이 두터웠고, 국군 차량창 병기감이었던 소 병기 준장과 이 기연 대령이 예편하여 소 병기씨는 새나라자동차가 문을 닫기 전까지 사장으로 있다가 그 후 하동환자동차로 와서 사장에, 이 기연씨 역시 이 회사의 부사장으로 잠시 있을 때여서 이들이 적극 주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60년대 말 군소자동차 공장들의 난립을 막기 위해 정리, 합병을 추진하던 정부시책에 따라 버스시장이 신진과 현대로 양분되고 하동환자동차는 정리대상에 걸려 신진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하여 신진 마크를 단 버스를 생산하다가 70년을 들어서면서 하동환자동차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여 휠 디스크와 소방차, 청소차, 덤프트럭 등 특장차개발 생산업체로 재기하여 70년대 말 그동안 접었던 버스 생산을 다시 시작했을 때 새한 자동차(대우 자동차 전신) 부산 버스공장 기술부에서 버스 설계를 하던 필자를 하동환 사장의 요청으로 동아 버스(하동환 버스의 후신) 제작에 참여 했다.
우리의 자동차 공업이 초창기를 걷고 있던 때에 국산버스를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동환 자동차의 사주인 하동환씨의 노력도 있었지만 당시 월남에서 미군수품 수송용역 사업을 크게 벌였던 대한항공 설립자인 조 중훈씨와 병기장교들의 도움이 켰다는 후문이다.
조 중훈씨는 개인적으로 하 동환씨와 교분이 두터웠고, 국군 차량창 병기감이었던 소 병기 준장과 이 기연 대령이 예편하여 소 병기씨는 새나라자동차가 문을 닫기 전까지 사장으로 있다가 그 후 하동환자동차로 와서 사장에, 이 기연씨 역시 이 회사의 부사장으로 잠시 있을 때여서 이들이 적극 주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60년대 말 군소자동차 공장들의 난립을 막기 위해 정리, 합병을 추진하던 정부시책에 따라 버스시장이 신진과 현대로 양분되고 하동환자동차는 정리대상에 걸려 신진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하여 신진 마크를 단 버스를 생산하다가 70년을 들어서면서 하동환자동차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여 휠 디스크와 소방차, 청소차, 덤프트럭 등 특장차개발 생산업체로 재기하여 70년대 말 그동안 접었던 버스 생산을 다시 시작했을 때 새한 자동차(대우 자동차 전신) 부산 버스공장 기술부에서 버스 설계를 하던 필자를 하동환 사장의 요청으로 동아 버스(하동환 버스의 후신) 제작에 참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