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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일본 자동차와 산업의 역사 (4) - 관동 대 지진과 미국자동차의 침투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4-01-13 18:49:38

본문

1923년 관동 대 지진으로 도쿄가 파괴되면서 철로위주였던 대중수송수단이 마비됐다. 신속한 복구를 위한 경제물동량과 사람의 수송을 위해서는 아무 곳이나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는 자동차가 가장 적합한 교통수단으로 판단한 도쿄시에서 미국으로부터 포드트럭 셰시(차체를 씌우지 않은 구동 장치) 1,000대를 도입 12인승버스와 트럭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이 버스가 바로 도쿄 최초의 시내버스로 유명한 엔따로 버스였다. 이후 자동차의 실용가치를 인정해 자동차 수요가 일본에서 급증하자 당초에 중국으로 진출하려던 계획을 포기한 미국자동차들이 대거 상륙했다.

1924년 포드가 요코하마에, 1926년 GM이 오사카에, 1927년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 쓰리가 차례로 상륙하여 각각 조립공장을 세우고 값싸고 성능이 좋은 미국산차를 대량 생산 일본시장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일본을 발판으로 세계 제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을 포함 중국, 만주 등 동남아세아 에 미국차를 대량 팔았다.

그런데 군부에서 정권을 잡았던 군국주의 일본은 미국자동차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자동차 공업을 보호하고 그들의 대 야망이었던 아세아와 러시아 정복의 꿈을 달성하기 위한 전복전쟁에서 속전속결을 위해 자동차가 절대 필요했다. 그래서 군용자동차 보호법을 만들어 일본 자동차 공장들에게 민수용자동차 생산을 통제하고 대신 자금을 주어 군용트럭 생산에 치중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기술과 시설이 미약해 만들어진 군용차들의 성능이 미국차를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포드나 GM의 쉐보레 트럭을 사용했다. 1931년부터 일으킨 만주 침략에서는 중국군과 일본군사이에 미국 트럭쟁탈전까지 일어나 쉐보레 부대니 포드부대라는 자동차 부대까지 생겨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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