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오토뉴스

상단배너

  • 검색
  • 시승기검색
ä ۷ιλƮ  ͼ  ī 󱳼 ڵδ ʱ ڵ 躴 ͽ ǽ ȣٱ Ÿ̾ Auto Journal  Productive Product
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세계 최초 - 최초의 자동차 교통법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4-09-01 15:18:20

본문

세계 최초 - 최초의 자동차 교통법

1800년부터 1900년까지는 증기엔진 자동차 시대였다. 1834년 영국의 귀족 스코트 러셀이 만든 증기버스가 승객 21명을 태운 채 운행하다가 보일러 폭발로 승객 2명이 사망하는 최초의 자동차 사고를 일으킨 이래 증기 자동차는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검은 석탄 연기가 빨래를 더럽히고, 무거운 바퀴가 도로를 파해치는 일이 벌어지자 점점 서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더욱이 증기 버스에게 손님을 빼앗긴 객마차와 기차업자들의 강력한 항의로 영국 의회는 증기 버스에게 마차나 기차보다 10배나 높은 세금을 책정했다.

급기야 농민들까지 증기자동차의 운행을 억제하라는 항의를 하자 영국의회는 1865년 빅토리아여왕의 이름으로 세계 최초의 교통법인 적기조례(Red Flag Act)를 선포했다.

<영국 내 모든 자동차들은 운전수와 화부 외에 붉은 깃발을 들고 자동차 앞 55야드 전방에서 차와 같은 속도로 달려가면서 행인이나 도로주변 주민들에게 “자동차가 와요”라고 외치면서 깃발을 흔들어야 하고, 시내에서는 시속 3km, 시외에서는 시속 6km 이상은 달리지 못한다. 또 자동차 무게 2톤 단위로 세금을 내야하고 시 경계나 주 경계를 넘을 때마다 도로세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밤에는 촛불이나 가스불을 달고 운행해야 하며 장애물을 만났을 때는 나팔을 불어 경고해야 한다는 항목도 들어 있었다. 당시 증기차는 최고시속 40km를 발휘할 정도로 기술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나 적기조례로 인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19세기 말에 발명된 가솔린 자동차에 밀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사진 위; 최초의 도로교통법
아래;적기조례(赤旗條禮)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하단배너
우측배너(위)
우측배너(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