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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미국 자동차 역사 - 스튜데베이커 자동차 (4)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6-01-18 16:57:06

본문

대 공황의 굴욕에서 영광으로
법정 관리에서 스투데베이커는 살아남기 위해 고급차인 프레지던트의 생산은 중단하고 중저가 모델인 딕테이터와 커맨더만 생산한 결과 1935년 봄에 모든 은행 부채를 갚고 법정관리에서 해방됐다. 지난 실패에 대한 자성으로 스투데베이커는 보급형 대중차에 주력하기위해 1939년에 커맨더의 아래급인 660달러라는 낮은 가격의 챔피언(Studebaker-Champion)을 내놓았다.

6기통 2.7ℓ 엔진을 얹은 챔피언은 디자이너 레이몬드 로위(Raymond Loewy)가 ‘무게는 적이다(Weight is the enemy)’라는 발상으로 디자인한 가볍고 효율 좋은 소형 자동차였다. 싼 가격과 효율적 디자인 덕분에 데뷔 첫해부터 놀라운 판매량으로 1941년에는 미국 베스트셀링 카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직후 다른 메이커들이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지 못하고 있을 때인 1946년에 스투데베이커는 새 모델인 챔피언과 커맨더 모델로 인기를 끌어 전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빅3와 전미자동차노조의 횡포로 사운 다시 기울어
그러나 스투드베이커는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압박에서 벗어날 셈으로 노동자들의 임금과 퇴직자들의 연금을 업계 최고수준으로 끌어 올린 결과 장기적 지출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한데 다가, 195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빅 3의 사활을 건 판매 전쟁의 여파가 더해지면서 자금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새로 영입한 회계전문가들은 회사의 단기 이익률만 추구하고 장기적 성장을 위한 비전이나 투자 관념이 전혀 없어 회사는 점점 기울어졌다.   결국 스투데베이커는 1954년 역시 기울어 가던 패커드자동차와 합병되어 스투데베이커-패커드(Studebaker-Packard Corporation)가 되었으나 합병에도 자금 사정은 더욱 악화되어 1956년에는 비행기 제작사인 커티스-라이트(Curtiss-Wright)사에 경영권을 넘기게 된다. 새로운 경영진의 권고로 스투데베이커-팩커드의 딜러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아우토유니언, DKW 등의 수입차를 함께 판매하면서 1959년에는 회사의 이름에서 패커드를 빼버리고 다시 스투데베이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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