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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미국 자동차 역사 - 포드자동차 (4)

페이지 정보

글 : desk(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6-03-08 15:54:40

본문

헨리 포드의 반전 사절단 ‘평화 선박(Peace Ship)'
헨리 포드의 거대한 부와 사회적 영향력은 정부도 괄시할 수 없게 되었다. 헨리는 세계 제1차 대전이 일어나자 반전론을 들고 나왔다. 그 한 예가 1915년 평화사절단의 유럽전선 파견이었다. 각계각층의 지식인과 연예인 학생과 교수를 태운 피스 쉽(Peace Ship)을 띄워 대서양을 건너 유럽 전선에 투입, 전쟁을 막으려 했다.

1917년 미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자 이를 막기 위해 백악관으로 달려가 교분이 있던 윌슨 대통령을 설득하려다가 오히려 설득을 당해 자동차 생산만 고집하던 헨리는 군용차까지 생산하기 시작해 2차 대전 때는 B24폭격기를 생산하는 등 반전론자의 기개가 돈에 꺾이기도 했다.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나던 1918년 윌슨대통령 덕분에 미시간주의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로 선출되기도 했으나 부를 앞세운 그의 교만 때문에 공화당에게 패배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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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 고집 때문에 퇴물로 변한 틴 리지 (Tin Lizzy)
틴 리지(싸구려 깡통차)가 애칭인 포드 모델 T는 영원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우선 시대의 변화와 유행을 무시하고 거의 검은색 일관의 5인승 쿠페만 생산을 고집했던 헨리 포드의 옹고집 때문에 수요자들이 식상하게 된다. 이 틈을 타고 GM이나 크리이슬러 등 다른 자동차회사들이 값이 좀 비싸지만 여러 가지 색깔과 디자인의 다양하고 편의성 우선의 차종을 개발해 수용자들의 구미를 맞추자 포드 차는 하루가 다르게 시장을 잃어간다.

조금 늦게 위기를 깨달은 헨리 포드는 64세 때인 1927년 포드 T형의 대체차로 유행 따라 업그레이드 시킨 모델 A와 4기통 엔진 일관이던 엔진을 6기통으로 바꾸는 등 가로 늦게 발버둥을 쳤으나 20년대 말에 불어 닥친 경제공황에 눌려 기력을 잃고 만다. 1930년대 들어와서 완전히 GM과 크라이슬러에 밀려나 결국 세계 제2차 대전 직전 자동차왕의 자리를 GM에 내주게 된다.

사운이 기울자 창업 이래 헨리를 받들던 참모들도 하나 둘씩 포드곁을 떠난다. 그뿐만 아니라 옹고집에 보수주의성격 때문에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아 노동자들과의 사이가 악화되어 이래저래 포드왕국은 황혼을 걷고 있는 헨리처럼 기울어가고 있었다.

1922년에 출간된 헨리의 자서전 속에 “기업이 너무 커지면 인간적일 수 없다” 고 말했다. 죽기 2년 전인 1945년에야 손자 포드 2세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자동차 왕 헨리포든 1세는 84세 때인 1947년 4월, 60년 가까이 같이 살아온 아내 클라라 곁에서 뇌졸중으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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