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적 경SUV 캐스퍼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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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구상(koosang@hongik.ac.kr) ㅣ 사진 : 구상(koosang@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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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11 11:5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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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승용차 규격의 차체를 바탕으로 SUV의 콘셉트를 가진 캐스퍼(Casper)가 등장했다. 현대자동차 브랜드의 경승용차로서는 지난 1997년에 등장했던 아토즈(Atoz) 이후 24년만에 등장한 차량이다. 캐스퍼는 광주형 일자리를 표방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서 생산되면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하는 계기가 될 걸로 기대를 모으고 있기도 하다.
기아의 경승용차 모닝도 외부의 중견 업체에서 위탁 생산되고 있는데, 그건 원가 중에서 인건비에 대한 고민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런 채산성 문제 때문에 그 동안 현대자동차에서 경승용차의 개발이 없었던 건지 모른다.
하지만 캐스퍼의 모델 별 가격 분포가1,385~1,960만원 인 걸 보면 광주형 일자리의 효과는 어디로 간 건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800만원에서 시작될 거라는 기사도 있었지만, 어림없는 일이 돼 버렸다. 2,000만원 가까이로 변화된 경승용차의 가격을 보면,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과 경쟁이 사라진 독과점 시장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경쟁 차량 스파크의 존재감이 강하지 않은 게 아쉽다. 과거 마티즈의 전성기 같은 시기는 다시 오기 어려운 걸까? 경승용차의 절대 강자였던 마티즈에 대항하기 위해 나왔던 24년 전의 현대 아토즈는 바뀌기 이전의 경승용차 엔진 배기량 규격에 따라 800cc엔진을 탑재하고 있었고, 그 당시의 시판 가격이 50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캐스퍼는 차체 제원이 전장 3,595mm, 전폭 1,595mm 로 우리나라 경승용차 규격(전장 3600mm, 전폭 1600mm, 전고 2000mm)에 맞춘 크기이다. 물론 캐스퍼의 전고 1,575mm는 높은 편에 속하지만, 또 다른 경승용차 기아 레이의 전고가 1,700mm이니, 레이가 규격 내에서는 가장 높다.
캐스퍼는 앞 모습에서 둥근 헤드램프를 강조해 왕눈이 같은 인상으로 디자인했다. 터보 모델은 헤드램프 안쪽으로 원형 공기흡입구가 더해져서 왕눈이를 강조한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디지털적 이미지의 패턴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 패턴은 테일 램프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차체 측면에서는 둥근 사다리꼴 형태의 휠 아치와 거기게 덧대진 검은색 플라스틱 가드로 SUV의 인상을 주었고, 휠 아치 부분이 차체에서 좀 더 부풀려진 볼륨으로 양감을 더하고 있다. 그리고 직경이 큰 17인치 휠을 달았다.
1997년의 아토즈가 12인치 휠을 달고 있어서 바퀴의 비례가 마치 롤러 블레이드에 달린 작은 롤러 같은 인상이었던 것에 비하면, 17인치가 기본 규격인 캐스퍼의 휠 크기는 놀라운 변화이기는 하다.
측면에서 눈에 띄는 건 차체 색으로 강조된 B-필러와 C-필러이다. A-필러는 블랙아웃 시켰다. 여기에 앞 문과 뒷문의 벨트라인, 즉 창틀의 수평 높이를 다르게 보이게 해서 앞 좌석은 개방적 이미지로, 뒷좌석은 좀 더 아늑한 공간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 같기도 하다. 물론 실제 창문 높이는 같다.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수평적 이미지이면서 클러스터와 중앙부 에 디스플레이 패널을 장착했다. 캐스퍼의 앞 좌석은 다른 경승용차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인데, 운전석과 조수석 등받이는 분리돼 있지만, 시트의 쿠션 부분은 벤치처럼 연결돼 있어서 좌우 이동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시트의 등받이와 쿠션의 색상도 다르게 해서 패션성을 강조한 인상이다.
조수석 등받이만 젖혀서 테이블이나 보조적인 콘솔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건 공간의 사용성에 비중을 둔 접근이지만, 1인 문화의 일면도 보이는 부분이다. 최근에 1인 가구 증가와 코로나 감염 병의 영향 등으로 개별 활동의 비중이 더 높아지는 게 앞으로의 추세라면, 이와 같은 공간 활용성이 경형 차량의 대표적 요구사항이 될 지도 모른다.
운전석과 조주석의 등받이 모두 앞으로 폴딩 시킬 수 있고, 2열 좌석의 앞 뒤 방향 슬라이딩과 등받이 각도의 조정도 가능해서 이를 활용하면 실내를 마치 하나의 방(房)처럼 쓸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캠핑이나 차박도 가능할지 모른다. 이런 공간활용 개념이 중심이라는 건 실제로 대부분의 SUV의 소유자들이 오프로드 주행은 드물게 한다는 것과 상응하는 부분일지 모른다.
차체 구조는 5도어 해치백 구조로 사실상 모든 SUV들이 기본적으로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SUV의 본질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4륜구동 장치는 적용되지 않았다. 물론 3기통 1,000cc 배기량에 4륜구동 시스템을 넣는 건 연비나 원가측면에서 난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캐스퍼는 SUV의 개념을 하드웨어로 접근하기보다는 공간 활용성 중심으로 접근한 걸로 보인다.
이처럼 캐스퍼는 하드웨어 중심의 SUV가 아닌,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SUV에 다가간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특징을 다른 말로 ‘SUV look’ 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SUV look’을 가진 경승용차를 준중형 승용차 가격에 사야 한다면, GGM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런 식이라면 정말로 4륜구동 기능을 넣은 경형 SUV, 말하자면 축소판 랭글러나 G바겐같은 콘셉트의 경형 SUV가 나온다면 3,000만원정도는 준비해야 될지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캐스퍼에 이를 테면 모닝 밴에 들어간 수동변속기를 단 800만원대 기본형 차량, 소위 깡통 모델이 있었다면, GGM의 의미도 살리고 정말로 젊은이들의 창업에 유용한 차가 됐을지 모른다. 세계적인 메이커 현대자동차에서 첨단기술이 그득한 비싼 값의 차를 만드는 건 당연하지만, 전체 모델 라인업 중에서 기본형 모델도 하나쯤 만들어 내놓는 게 다양한 요구를 가진 소비자들을 위하는 일이 아닐까? 그게 ‘상도’인지 모른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