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에 북미 전용 모델로 등장했던 기아 텔루라이드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 2023년형으로 현지에서 공개됐다. SUV의 세계적인 인기와 더불어 국내에서도 불고 있는 SUV의 대형화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GV80이나 팰리세이드 같은 준대형급 SUV가 많아졌다. 그런데 이들 차종은 국내 시장에서 대형급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미국 시장에는 훨씬 더 큰 모델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쏘렌토나 싼타페 같은 국산 중형급 SUV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축에 속하는 차들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대형 SUV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 것은 펠리세이드의 등장이었다. 펠리세이드의 등장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대형 SUV 소비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던 차종은 쌍용의 G4 렉스턴 이었다. G4 렉스턴은 보디 온 프레임(body on frame)구조의 견고한 차체에 후륜 구동방식을 기반으로 한 4륜구동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오프로드 주행에 적합한 정통 4륜구동 차량이었다.

차량의 크기를 보면 북미 전용 모델 텔루라이드와 펠리세이드, G4렉스턴이 각각 길이가 5,001mm, 4,980mm와 4850mm로 텔루라이드가 가장 길고, 전고는 1,750mm, 1,750mm, 1,850mm로 렉스턴이 100mm 높고, 전폭 1,989mm, 1,975mm, 1,960mm로 텔루라이드가 가장 넓다. 축거는 2,900mm, 2,900mm, 2865mm로 렉스턴이 35mm 짧다.

이들 중 상대적으로 도심지 지향의 모노코크 구조의 차체에 앞 바퀴 굴림 방식 기반의 4륜구동방식의 텔루라이드와 펠리세이드는 오프로드도 물론 갈 수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도심지 주행에 좀 더 비중을 가진 차량들이다. 여기에 더해서 미국식 라이프 스타일의 차량이라는 이미지를 풍기면서 펠리세이드가 중년 가장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이렇게 국내에서도 준대형급 SUV의 시장이 커졌고, 전반적으로 SUV의 공간 활용성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의 모든 대형 SUV 소비자들이 캠핑이나 차박을 일상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대형 SUV가 주는 그러한 레저 중심의 이미지를 소비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차량의 활용이 과거처럼 단지 ‘자가용’에 그치거나 출퇴근용으로만 사용되는 것에서 좀 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그야말로 개인용 이동공간의 의미로 변화된 것이다.

기아 브랜드에서는 국내 시장에서는 쏘렌토가 가장 큰 SUV이고, 곧 전기 동력의 대형급 SUV EV9이 출고될 것이지만, 북미 시장에는 펠리세이드 급의 텔루라이드를 2020년형부터 판매해왔었다. 그리고 그 모델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 2023년형으로 등장한 것이다. 2023년형 텔루라이드는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어서 큰 변화는 없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수직 그래픽의 LED 헤드램프 정도이다.

오히려 실내에서 디스플레이 패널 적용으로 꽤 큰 변화를 보여준다. 사각형 디스플레이 패널로 인해 내외장의 디자인 이미지의 통일성은 좀 더 높아진 듯이 보인다. 사각형 중심의 조형으로 텔루라이드는 펠리세이드와 구분되는 감각을 보여준다.

물론 기아는 이미 쏘울, 레이 등의 박스형 이미지와 젊은 감각의 차량들을 갖고 있다. 쏘울은 국내에서는 인기가 없지만, 미국에서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레이 역시 경승용차이지만, 박스형 콘셉트의 차량이다. 사실 무덤덤할 수도 있는 박스형 자동차 디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감각적 인상을 풍긴다. 게다가 이런 박스 형태는 아이폰 같은 디지털 기술의 성향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기본적으로 텔루라이드는 1열 이후의 공간 확보나 3열의 공간 활용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미국에서 가족용 SUV는 우리 기준의 초대형 SUV가 중심이 되므로, 텔루라이드는 젊은 층이나 아직은 가족 구성원이 많지 않은 소비자들을 지향하는 차종이므로, 1열 좌석의 두 사람 중심의 공간 활용성을 강조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SUV가 주류가 되는 흐름이 거의 모든 시장에서의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각 시장마다 SUV의 활용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본다면 SUV 중심의 소비자 모습은 차량의 활용성, 즉 단지 이동만을 위한 것에서 공간을 생활의 일부로 활용하는 모습으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 중에서 특히 북미 시장에서의 SUV는 소비자의 생활 양식을 각 차종 별로 다르게 지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텔루라이드는 그들 중에서 비교적 젊은 소비자를 지향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