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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교수는 기아자동차 디자인실에서 크레도스 책임디자이너를 역임했으며 기아자동차 북미디자인연구소 선임디자이너를 지내기도 한 자동차디자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동차 전문 디자이너입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구상교수의 자동차 디자인 이야기는 독자여러분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프랑스의 건축가와 자동차 디자인

페이지 정보

글 : 구상(koosang@hongik.ac.kr)
승인 2024-02-19 10:14:19

본문

언젠가 글에서 프랑스 차량의 창의적 특징에 관한 글도 썼고, 그런 특징이 프랑스의 예술적 창의성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 이야기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주변의 아무 영향 없이 단독으로 생기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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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자동차는 보다 큰 범위의 건축 작업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건축가는 정말로 많지만, 그 중에서도 르코르뷔지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의 이름 르코르뷔지에는 예명이며, 본명은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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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에두아르 잔레-그리(Charles-Édouard Jeanneret-Gris) 또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라고 불리는 그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작가이며, 현대건축에 공헌했다고 평가됩니다.

 

그의 인생을 다룬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그는 프랑스 국경에서 500km 떨어진 곳이면서 불어를 사용하는 스위스 서북부 지역 뇌샤텔 주(Neuchâtel州)의 쥐라(Jura)산맥의 라 쇼 드 퐁(La Chaux-de-Fonds)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그 지역의 전통 산업이었던 시계 세공을 배우기 위해 「라 쇼 드 퐁 미술학교」 에서 금속 공예를 익히지만, 그의 스승은 그에게 건축 공부를 권유)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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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술학교 재학 기간에 유럽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 1907년에는 파리로 가서 프랑스 철근 콘크리트 건축의 선구자로 불린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 1874~1954)의 설계 사무실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이후 1910년과 1911년에는 건축가 피터 베렌스(Peter Berens: 1868~1940)의 베를린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나중에 20세기의 대표적 건축가가 되는 인물들인 미스 반 데어 로에, 발터 그로피우스 등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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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는 이후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이었던 4년간 스위스에서 지내면서, 자신의 모교 「라 쇼 드 퐁 미술학교」에서 강의하며 건축기술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의 착안 중 하나인 「돔이노 시스템(DomIno System)」은 건물의 기초에 콘크리트 기둥과 슬래브(slab)를 세우고, 다시 그 위에 다른 층의 슬래브와 기둥을 얹는 구조로, 내력벽(耐力壁) 구조를 가지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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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고층건물에서 볼 수 있는 커튼월 구조(curtainwall structure), 즉 외벽 전체가 유리로 덮인 구조는 건축물의 외피(外皮)를 이루는 유리가 건물을 지탱하는 내력벽이 아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즉, 외벽은 건물 외부의 기후 조건과 실내를 나누는 용도로만 존재하므로, 이에 따라 건축물의 외벽을 콘크리트 벽 대신에 투명한 유리를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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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에 르코르뷔지에는 프랑스의 입체파 화가 아메데 오장팡(Amédée Ozenfant; 1886~1966)을 만나서, 서로 공통된 관심사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장팡은 그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격려하는 등 합동 작업을 시작합니다. 르코르뷔지에의 조형은 1948년에 완성된 「모뒬로르(Modulor)」체계에서 건축적 비례의 척도로 「황금비(Golden Section)」로 나타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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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h)의 「비트루비우스 인체 비례(Vitruvian Man)」,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의 중세 건축 작에서 인체 비례를 건축의 외관과 구조를 설정하는 데에 이용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 역시 그 전통의 연속이라고 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황금비율을 반영한 인체 측정학(Anthropometry)과 피보나치의 수(Fibonacci numbers)를 씀으로써 건축에서 쓰이던 서로 다른 단위의 미터법(Metric)과 피트법(Feet-inches)을 통합하는 방법으로 「모뒬로르(Modulor)」 체계의 토대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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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러한 수학적 비례를 모더니즘의 중심으로 생각했으며, “모던 하다는 것은 패션이 아니라 국가” 이며, “집은 생활을 위한 기계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그의 생각은 독일의 기술사학자(技術史學者) 뫼저(Kurt Möser)의 주장처럼 20세기 초에 헨리 포드(Henry Ford)가 고안해낸 일관생산방식(一貫生産方式), 일명 「포드주의 대량생산 방식(Fordism)」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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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세기 초에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였던 「브아쟁(Voisin)」에서 1926년에 내놓은 승용차 모델 「브아쟁 C7 루미뉴즈(Voisin C7 Lumineuse)」를 소유하고 있던 르코르뷔지에는 20세기의 신기술의 대표인 자동차의 기동성과 활용성에 매료되어 그의 건축은 자동차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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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는 1928년에는 프랑스 자동차 업계에서 실시한 자동차 디자인 공모전에 황금비와 √2의 지수를 결합한 개념의 작품을 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가 내놓은 기하학적 디자인은 공모전에서 낙선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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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뒤로 약 50여 년이 지난 시점이면서 지금부터 37년 전이었던 1987년에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 1938~)는 르코르뷔지에의 공모전 작품 「Voiture Minimum」의 디자인을 재현한 목재 모형을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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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의 모형 사진은 쥬지아로가 제작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이미 37년 전의 일이기는 합니다. 아무튼 이로써 반세기 넘게 도면으로만 존재했던 르코르뷔지에의 수학적 자동차 디자인이 입체적인 형태를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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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편으로 1948년에 등장한 시트로앵 2CV(Deux Chevaux)는 둥근 지붕을 가진 캐빈 형태로 건축적 개념의 자동차 디자인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트로앵 되슈보의 디자인이 르코르뷔지에가 1928년에 디자인했던 자동차 「Voiture Minimum」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긴 합니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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