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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교수는 기아자동차 디자인실에서 크레도스 책임디자이너를 역임했으며 기아자동차 북미디자인연구소 선임디자이너를 지내기도 한 자동차디자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동차 전문 디자이너입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구상교수의 자동차 디자인 이야기는 독자여러분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의 3차원 이미지 복원 -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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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8-07-31 18:55:40

본문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의 3차원 이미지 복원 - 상

오늘은 필자가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3D 프로그램을 통해 복원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실 필자가 이 작업을 한 것은 벌써 4년 전인 2004년 여름이지만, 갑자기 이글을 쓰게 된 동기는 얼마전 국내의 모 자동차 월간지에 실린 국민대학교 박종서 교수님의 포니의 동판조각품 작업을 위해 국내에 포니의 도면이 없어서 이탈리아에 가서 구해왔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필자가 복원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는 4년 전에 포니를 3D로 재현하기 위해 용인의 교통박물관에 전시된 포니의 실물차량을 사흘간 실측을 했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으며, 무엇보다도 필자의 ‘민폐’를 이해해 주신 교통박물관의 모든 분들께 이 글을 통해서나마 그 때 하지 못했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31998_1.jpg그런데 포니를 3차원 프로그램 상에서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차의 모양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정확한 치수를 알아야 했다. 그렇지만 30여 년 전에 나왔던 포니의 치수는 고사하고 이제는 굴러다니는 차를 구경하기조차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자동차 10년 타기」 같은 모임도 있긴 하지만, 차를 사서 타다가 5년만 지나도 어떤 부품은 구하기도 어려워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보니,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차를 실제로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 따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런 이유 때문에 필자가 더더욱 가상의 모습으로라도 포니를 되살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는 어떤 차였을까? 요즈음에는 포니를 아는 사람은 20대 나이에서는 ‘이름은 들어봤다’ 정도이고, 30대에서 40대, 그리고 그 이상의 장년층들은 어렴풋이는 기억을 할 것이지만, 대다수는 정확한 모양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고유모델’ 이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자. 어떤 경우에는 고유모델과 독자모델이라는 말을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조금 다르다. 고유모델이란 다른 메이커가 가지지 않은 유일한 차종을 의미한다. 한편 독자모델은 고유모델을 개발할 때에 외부로부터의 기술조달 없이 그야말로 ‘독자적’으로 개발한 차종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요즈음에 나오는 우리나라의 고유모델들은 대부분 독자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31998_2.jpg그러나 포니가 개발될 때의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독자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정도는 사실 아니었다. 그러나 외국메이커에 없는 스스로의 차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분명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어쨌든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는 정부의 국민차 개발계획에 의해 현대자동차가 차체의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의 손을 빌렸으며, 엔진과 변속기, 차축 등은 일본의 미쓰비시의 랜서(Lancer) 승용차의 것을 기술제휴로 들여와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이렇게 외부의 도움을 받은 것이기는 했으나, 포니는 한국의 메이커 ‘현대자동차’만이 가진 ‘고유모델’이었던 것이다. 포니의 차체 디자인은 1974년 2월에 완료되었고, 설계와 공장건설 단계 등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76년 2월부터이다.

포니는 뒤쪽이 크게 경사진 패스트 백(fast back) 형태이고, 네 개의 문을 가지고 있으며, 승객실과 트렁크 공간이 분리된 3박스(box) 구조, 즉 세단(sedan)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패스트 백 형태의 차들은 객실과 트렁크가 연결된 2박스(box) 구조에, 커다란 테일 게이트(tail gate)가 있는 해치 백(hatch back)구조인데, 포니만은 그러한 유형이 아닌 매우 특이한 구조와 형태였던 것이다. 물론 포니는 이후에 웨건(wagon)과 픽업(pick-up), 그리고 1980년 4월에는 3도어 해치백모델도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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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의 등장은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을 외국모델의 단순조립생산에서 고유모델의 개발과 생산 단계로 바꾸어 놓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세계 자동차역사의 발전단계에서도 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동차의 발전단계와 일치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일반적인 자동차역사의 발전단계를 보면 1886년 칼 벤츠(Karl Benz)에 의한 최초의 자동차 등장 이후, 1908년 헨리 포드(Hery Ford)의 T형의 대량생산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구분되는 실용화․대중화․단순화를 제1차 혁명으로 보고, 1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시작된 고급화․대형화․다양화를 제2차 혁명, 그리고 1973년의 제1차 오일쇼크로 야기된 소형화․경량화․부품 공용화를 특징으로 하는 제3차 혁명으로 나누는데, 여기에서 제3차 혁명의 대열에 선 것이 바로 포니 이었던 것이다.

31998_4.jpg포니는 시판 첫해에 우리나라에서 1만 726대가 팔려 시장점유율 1위를 달렸고, 1978년 12월에는 내수 7만8천8대, 수출 2만4천692대를 달성하는 등 고속성장을 하였다. 물론 오늘날의 현대자동차의 연간자동차수출대수가 100만대 이상인 것을 보면 2만4천여 대의 수출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의 자동차메이커가 자동차를 수출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포니는 이후 1982년에 페이스 리프트(face lift) 모델 포니2가 나오기까지 내수 20만 8천대, 수출 9만 2천대로 최초로 단일차종 30만대를 넘는 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이렇듯 포니는 우리나라의 자동차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모델이다.

한편 포니는 쥬지아로에 의해 컨셉트카 ‘포니 쿠페’도 디자인되어 이탈리아에서 열린 토리노 모터쇼에도 출품되기도 했다. 물론 포니 쿠페는 양산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지금 보아도 깔끔하고 모던한 이미지로 잘 정돈된 스타일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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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포니의 인연
그런데 포니는 필자에게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 자동차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977년에 필자의 부친께서는 포니를 사셨다. 그 전까지 몇 대의 중고 ‘코로나’를 전전하시다가 드디어 ‘새 차’를 장만하신 것이었다. ‘새 차’의 의미는 필자에게도 남달랐다. 중고차와는 달리 정말로 모든 것이 깔끔한 것은 물론이고, 차안에서 풍겨오는 새 차 특유의 냄새는 가히 뇌쇄적(惱殺的)이었다. 그 냄새는 아직도 콧가를 간지럽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필자는 ‘새차냄새’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 아프게 하는 페인트냄새라며 고개를 가로젓기도 하지만 필자는 그 냄새가 좋다.
하여간 포니는 필자에겐 특별했고, 이전의 코로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련되고 모던(modern)했다. 여기에서도 보고, 저기에서도 보고, 필자는 틈날 때마다 포니를 아주 오랜 시간 구석구석 관찰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즐겨 그리며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었던 필자였지만, 그때부터 포니의 디자이너 쥬지아로는 필자에겐 신(神)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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